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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월든(Walden)

by 지혜의 항구 2023. 11. 9.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언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 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분은 병들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러나 돈을 벌려고 너무나 무리를 한 결과 끝내 여러분은 병이 들고 마는 것이다.”
“그가 하루 종일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막연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라. 불멸이나 신성은커녕 자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 즉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진 평판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특하고 건전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훤히 솟구쳐 오른 태양을 잊지 않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 혹은 행동 방식일지라도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과거에 해 놓은 일만을 가지고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시도해 본 것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신체적 냉기 이상으로 사회적 냉기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 중의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향상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생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자연주의자, 작가로,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났고, 1862년 5월 6일에 태어난 콩코드에서 사망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랠프 월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고 교제했습니다. 그는 콩고의 월든 호수 근처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홀로 지냈습니다. 그 시기에 월드에서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그의 대표작인 《월든 - 숲속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후 동시대뿐 아니라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물질의 욕심과 인습,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시민의 자유에 관해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는 뜻으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으며, 국가에 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에도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교제했던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생활
소로는 1833년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Hollis Hall에서 살았으며, 수사학, 고전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의 전통 교육 방식과 과목 구성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다양성이 부족한 교육 과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주로 고전 언어, 종교, 철학 등의 고전 주제를 가르쳤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학문을 경험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한정된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암기 중심의 교육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육은 주로 학생들이 암기하고 기억하고 복사하는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창의적 사고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는, 실용적 경험을 할 수 없는 교육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유용한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연과 인간에 대해 더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했고, 대학의 교육방식이 이를 방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규범과 규칙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자유롭게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소로는 수업 중에 교수가 라틴어 문법 교재를 가르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수업 실에서 책을 들고나와 버렸습니다. 그는 그 책을 교수에게 던지고 "나는 이런 것을 위해 대학에 온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소로가 느끼기에 라틴어 문법 수업이 자연과 인간 경험과는 거리가 먼, 실생활에서 직접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주제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연필 제조업: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아버지와 함께 연필 제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필을 만들었지만, 유럽의 연필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점토를 사용해 그라파이트와 섞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이 방법은 연필의 품질을 향상했고, 그의 회사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연필 제조업체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연필 제조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계를 발명했습니다.
교사 생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직장은 콩코드의 지역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의 직업은 그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겨우 2주 만에 교사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학교 이사회의 임원이 소로의 교실을 방문했을 때, 시끄럽다고 판단하고 좀 더 엄격하게 학생들을 관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로는 체벌을 사용하여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에 반대하고 학교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콩코드의 중심부 학교에서 전임 교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역시 엄격한 체벌로 학생들을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자 곧바로 사임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저서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측량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측량사라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측량사는 땅과 부동산의 경계, 크기, 지형, 지적 경계 등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의 측량 업무를 통해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자연을 관찰하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 '월든’에 깊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소로는 측량사의 직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서
월든(Walden): 이 책은 소로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연못 주변에 자신이 지은 오두막에서 2년 동안 단순한 삶을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을 펼치며, 사회보다는 자연에 더 가까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이 건설한 오두막에서 생활,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사회와의 차이점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책은 소로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빌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이 에세이에서 소로는 법률보다 양심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률과 도덕적 책임 사이의 관계를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정부가 불공정할 때는 시민들이 법을 따르지 않고 정부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렇게 국가의 불평등한 폭정에 대해 저항해야 하며, 개인의 독립적인 도덕적 판단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산책(Walking): 이 책은 동생과 함께 콩코드와 메림랙 강에서 보낸 일주일의 여행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시간에 대해, 형제간의 유대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소로의 감성적인 사유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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